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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원수봉 등에

by 만들 2020. 11. 14.

재미난 글감을 생각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나에 대하여 징징거리지 않고, 잘 모르는 것에 대한 헛소리를 늘어놓지 않는 그런 글감이 풍족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감을 누구 앞에서나 떠올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마땅한 대화 주제가 생각나지 않을 때 포기하고 얼른 대화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랄 때가 있다. 상대가 포기하지 않고 여러 이야깃거리를 던질 때면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나도 열심히 대화거리를 생각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1시쯤 집을 나선 것 같은데 3시쯤 원수산 정상 원수봉에 올랐다. 행복도시에 뿌연 먼지인가 안갠가가 가득 차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행복도시를 내려다보면 아직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땅이 많이 보여 안심이 된다. 정자 같은 곳에 앉아서 존리가 젊어서부터 집에 돈을 꼴아박아두는 것은 바보 짓이라 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기분 좋아 그가 대표로 있는 메리츠자산운용사의 주식을 찾아보았다. 그의 인터뷰에는 악플이 잔뜩 달려 있었다. 자신이 산 집 값이 많이 올랐다, 집을 산 게 다행이다, 그가 헛소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큰 돈을 들여 아파트틀 구매한 사람들이 마음 상했나보다. 존리 이야기는 아파트를 산 게 잘못된 투자라는 게 아니라 같은 값으로 주식을 샀으면 수익률이 더 높았을 거란 말이다. 아파트 투자와 주식 투자의 안정성을 비교하며 비판하는 댓글이면 납득이 되었을 것이다. 바보 같은 글들을 그러려니 하는 훈련이 되면 좋겠다. 그런 글을 읽는 게 일이다 보니 훈련이 되고 안되고가 나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워도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노력은 효과가 있다. 아파트 이야기 이어서 원수산 가는 길에 있는 힐스테이트 아파트 위치가 좋아보여서 가격 검색을 해봤더니 7억원 정도였다. 투자금으로는 지불할 수 있겠지만 단지 주거를 위한 회수 불가능한 비용으로는 지출하기 싫다. 확실히 우리 나라 아파트는 투자 수단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원수봉 정상 정자에 앉아있을 때 등에 같이 생긴 곤충이 잠깐 날아왔다 떠났다. 마치 구찌 장식으로 쓰이고 있는 곤충을 닮은 등에였다.

새삼스럽게 그 등에가 이뻐보였다. 누군가가 먼저 벌과 같은 곤충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도 납득시킨 덕이다. 누군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처음으로 벌과 같은 곤충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알아차리고 기쁨을 느꼈던 순간을 생각했다. 나처럼 가만히 앉아 쉬고 있던 참이었을까? 첫눈에 반했을까.

자신 주변에 잠깐 날아온 곤충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챈 사람처럼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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